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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레 와인산지

A-tact 2012. 12. 13. 14:25

 

 

웅장한 안데스는 세계에서 가장 긴 산맥이다. 또한 히말라야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높은데, 안데스의 봉우리들은 해발 6,000m가 넘는다. 산맥이 형성될 때 퇴적암들이 포개져 등성이를 이루면서 상당수의 아늑한 골짜기가 생겨났는데, 칠레의 포도원 상당수가 바로 이 골짜기에 위치해 있다. <출처: ©Viña Errazuriz>

칠레는 거의 완벽하게 격리되어 있다. 서쪽으로 태평양, 동쪽으로 거대한 안데스 산맥이 있으며, 북쪽으로 아타카마 사막, 남쪽으로는 대략 644km 가량 남극의 얼음 덩어리들이 곳곳에 펼쳐져 장관을 이룬다. 칠레는 길이가 대략 4,345km에 이르지만 폭은 매우 좁은 편으로, 가장 좁은 곳은 불과 154km 밖에 되지 않는다. 이 무시무시한 자연경계선 안에 포도와 다른 과일에게는 거의 에덴동산 같은 천혜의 자연환경이 펼쳐져 있다.

칠레의 따뜻하고 건조하며 밝은 햇살이 비치는 날들은 지중해를 연상시킨다. 안데스 산맥에서 녹아 내리는 눈은 강물로 흘러 들어 관개에 쓰인다. 게다가 물리적으로 고립되어 있어서 병충해로 인한 포도밭 피해가 거의 없으며, 살충제나 화학비료를 쓸 필요도 없다. 이런 환경에서 좋은 와인을 만드는 것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며, 오늘날 칠레는 세계적으로 가격 대비 품질이 좋은 와인 산지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칠레에서 최근 저가 와인의 수는 줄어들기 시작한 반면, 중고가 와인의 수는 계속 늘고 있다.

 

지금까지 칠레의 포도원들은, 19세기 중후반 전세계의 포도밭을 파괴했던 치명적인 필록세라(포도나무뿌리진디)의 희생양이 된 적이 한번도 없다. 이에는, 물리적으로 격리된 지리적 위치, 건조한 토양, 범람하는 물을 이용한 관개 등이 어느 정도 기여했으리라 추측된다. <출처: ©Cono Sur>

칠레 최초의 유럽산 포도나무(즉, 비티스 비니페라)는 16세기에 스페인 정복자들과 선교단들이 멕시코를 거쳐 페루에서 가져온 스페인 품종들이었다. 이후 스페인은 칠레의 역사적, 정치적 헤게모니를 장악하게 되었지만, 정작 칠레 와인 산업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은 프랑스이다. 19세기 중반, 칠레의 부유한 지주와 채광업자들은 부를 과시하기 위한 수단으로 보르도 샤토를 본뜬 와인양조장을 짓기 시작했다. 그들은 카베르네 소비뇽을 비롯한 프랑스 포도 품종을 수입하여 재배했고, 가능한 프랑스 와인양조자들을 고용해서 와인을 만들었다.

20세기의 상당 기간 동안 칠레 와인은 평범하고 그저 마실 만했을 뿐, 그 이상은 아니었다. 그러나 1980년대 후반, 칠레의 정치, 경제, 사회 정세가 급변하면서 와인산업에 대내외적으로 상당한 투자가 이루어졌다. 10년이 채 지나지 않아 칠레는 제3세계 와인생산자에서 ‘남미의 보르도’로 격상되었다. 칠레에 최초로 투자한 유럽의 저명한 와인 가문 중에는 스페인의 토레스(Torres) 가문과 보르도의 샤토 라피트 로칠드를 소유한 로칠드(Rothschild) 가문도 있었다.

 

수확한 포도 중 건강한 포도들을 양조장에서 선별하는 모습. <출처: ©Lapostolle>

칠레의 포도원들은 다양한 골짜기에 둥지를 틀고 있다. 대표적인 곳이 칠레 북부의 아콩카구아와 카사블랑카 밸리, 칠레 중앙의 마이포, 라펠, 쿠리코, 마울레 밸리 등이다. 이들을 포괄하는 센트럴 밸리는 안데스산 높은 곳에서 시작되어 태평양으로 흘러 들어가는 여러 강들에 의해 나뉜다. 좀 더 서늘하고 축축하며 늪이 많은 칠레 남부의 두 밸리, 비오비오와 이타타는 역사적으로 파이스 품종을 사용한 벌크 와인을 만들었으나, 최근 품질 향상을 위한 노력이 종종 목격되고 있다.

센트럴 밸리 중에서 가장 유명한 곳은 카베르네 소비뇽 와인으로 유명한 마이포 밸리다. 칠레에서 가장 오래된 와인생산지 중 하나이며, 수도인 산티아고와 가까워서 많은 와이너리들이 이곳에 본부를 두고 있다. 한편 카사블랑카 밸리는 최근에 떠오르기 시작한 유명 와인산지로, 칠레 최고의 와인을 만들어 낼 잠재력을 지닌 곳이다. 칠레의 거의 모든 정상급 와인생산자들이 이곳으로몰려 와 샤르도네와 소비뇽 블랑을 중심으로 한 국제 품종을 재배하고 있다. 카사블랑카 밸리 북쪽의 아콩카구아 밸리는 칠레의 와인산지 중 가장 덥다. 따라서 카베르네 소비뇽과 메를로처럼 열을 좋아하는 적포도 품종이 잘 자란다.

칠레에서 재배되는 모든 포도 품종 중에서 최고의 스타는 단연 카베르네 소비뇽이다. 가격이 적당한 칠레의 카베르네 소비뇽은 접근성이 뛰어나고, 민트, 블랙커런트, 올리브의 부드러운 풍미 안에 연기 향이 은은하게 퍼지는 특징이 있다. 칠레산 샤르도네는 대체로 수준급이고 직설적이다. 오늘날 이 와인은 비교적 단순하고 깔끔하며 맛있다. 칠레의 소비뇽 블랑은 상당히 절제되어 있으며, 뉴질랜드나 프랑스 루아르 밸리의 그것이 지닌 극적이고 관통하는 듯한 풋내의 풍미는 거의 없다.

 

칠레는 와인뿐만 아니라 전통적인 증류주인 피스코(Pisco)로도 유명하다. 피스코는 뮈스카와 토론텔, 그리고 페드로 히메네스 품종을 각각 또는 블렌딩해서 만드는데, 몇 달간 나무통에서 숙성된 뒤 증류된다. 스트레이트로 마시기도 하지만, 칵테일 형태로 가장 많이 소비된다

참고문헌

더 와인바이블 (The Wine Bible)
30여 년 넘게 와인작가, 컨설턴트, 교육자로 활동하고 있는 캐런 맥닐의 저서로, 미국 내 베스트셀러이자 수상작이다. 출간된 후 45만부 이상 팔렸다. 집필하는데 무려 십 년이 걸린 이 책은 와인을 주제로 쓴 가장 포괄적이고 권위 있는 책으로 인정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