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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의 세계

A-tact 2013. 3. 19. 13:19

 

 

모신나강 M1891

1941년 6월 22일 소련을 기습 침공한 독일군은 그야말로 파죽지세였다. 불과 석 달 동안 민스크, 스몰렌스크, 키예프 등에서 놀라운 대승을 거두며 무려 300만에 가까운 소련군을 순식간에 붕괴시켜 버렸다. 인류가 벌인 전쟁사상 보기 드문 승전의 기록이었다. 독일군 선두부대는 모스크바를 향해 질주했고 소련의 최후는 멀지 않아 보였다.

그런데 10월이 되자 공기가 순식간에 차가워지고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러시아에서는 겨울이 빨리 찾아온다는 것을 알았지만 독일군은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독일 기상대가 그 해 겨울은 그리 춥지 않을 것이라는 예보를 내놓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1941년 유럽을 휩쓴 추위는 40년만의 혹한이었다. 모든 것이 얼어붙었고 신나게 달려가던 독일군도 더 이상 나아갈 수 없었다.

상상을 초월할 정도의 혹한은 사람도 움츠러들게 만들었지만 그보다 더 큰 문제는 무기가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총이나 대포 같은 화기도 툭하면 작동을 멈추었다. 그런데 이틈을 타서 반격에 나선 소련군은 쉬지 않고 사격을 가해 왔다. 그들의 무기는 바로 모신나강(Mosin-Nagant) 소총이었다. 그 동안 구닥다리라고 폄하하던 소련군의 소총이 모든 것이 얼어붙은 혹한에도 문제없이 불을 뿜어대자 독일군은 당황했다.

 

 

제1차 대전 당시 모신나강 소총으로 무장한 제정 러시아군. 모신나강 소총은 구식이지만 제2차 세계대전에서도 독일군을 놀라게 했다.

오래되었지만 좋은 소총

모신나강은 19세기 말 러시아 제국 시절에 제작된 소총으로, 2차대전 당시 독일군 보병이 주력 화기로 사용하던 Kar98k와 비슷한 시기에 탄생하였다. 물론 처음 제작된 당시의 소총을 그대로 사용하는 것이 아니고, 시간이 흐르는 동안 많은 변형과 발전이 있어왔다. M2 중기관총이나 M1911 권총의 예에서도 알 수 있듯이 총기는 단지 오래 전에 탄생했다고 구식으로 치부할 수 없다.

모신나강은 독일군의 Kar98k에 비해 무게도 많이 나가고 더 길어 외관은 투박해 보였다. 1차대전에서의 교전 경험과 독소전 초반의 승리 덕분에 일선의 독일군은 소련군의 능력과 무기를 은연중 폄하했다. 더구나 슬라브족이 열등한 인종이라고 세뇌 당하다시피 한 보통의 독일군 병사들은 소련군이 좋은 무기를 사용한다는 자체를 인정하려 들지 않았다.

그런데 그것은 엄밀히 말해 착각에 불과했다. 지금까지 독일군이 거둔 승리는 무기보다는 작전의 탁월함과 소련군 지휘부의 무능이 함께 어우러진 결과였다. 독일군의 생각과 달리 소련군이 보유하고 있던 무기, 그 중에서도 최전선 병사들이 직접 사용하는 무기의 품질은 상당히 우수했다. 모신나강 소총도 그러한 무기 중 하나였다.

 

 

다양한 종류의 모신나강 시리즈

패전에서 얻은 경험

1877년 러시아와 오스만투르크제국은 또 다시 전쟁을 벌였다. 꾸준히 동방으로 진출하려던 러시아와 동방의 터줏대감이던 오스만투르크제국은 1770년대에 처음 충돌한 후 무려 100년 동안 싸움을 벌였는데, 이것이 여섯 번째였다. 대체로 러시아가 승리했지만 이번에는 최신식 윈체스터(Winchester) 소총으로 무장한 투르크군의 공격에 러시아의 피해가 컸다. 전후 러시아는 이에 맞설 수 있는 강력한 소총을 개발하기로 결정했다.

제1차 대전 당시 방어전에 돌입한 러시아군. 백병전을 대비하여 커다란 검을 장착한 모신나강 소총의 모습이 마치 창과 같다.

러시아군의 세르게이 모신(Sergei Mosin) 대위는 벨기에 출신의 총기 엔지니어인 레옹 나강(Léon Nagant)의 도움을 받아 새로운 소총 제작에 나섰다. 그들은 30구경 탄을 탄창이나 클립을 이용하여 장탄하는 방식으로 연사력을 높이려 했다. 이렇게 제작한 소총을 곧바로 군 당국에 보내 실험에 들어갔는데, 상당한 호평을 받아 즉시 제식화가 결정되었다. 이렇게 탄생한 최초의 모델이 M1891이다.

외관은 당시까지 러시아군이 사용하던 베르단(Berdan) 소총과 유사했지만 성능은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좋았다. 볼트액션 방식이어서 단발로 쏘아야 했지만 5발을 장탄할 수 있어 숙련된 사수는 빠르게 연사 할 수도 있었다. 7.62×54mm탄을 사용하여 유효사거리가 550미터로 길었고(주준경 사용시 750미터 이상) 파괴력도 양호했다. 비록 기다란 총신 때문에 휴대가 불편했지만, 총검을 장착했을 때는 마치 창과 같아 백병전에 상당히 효과적이었다.

가장 큰 전쟁을 승리로 이끌다

1899년 중국에서 발생한 의화단운동(義和團運動)을 진압하려 8개국 연합군이 결성되었을 때 러시아는 M1891을 처음으로 실전에 사용했고, 이후 1905년 발발한 러일전쟁 당시에 많은 수의 모신나강 소총을 투입했다. 이처럼 탄생과 동시에 실전을 거친 모신나강 소총은 조준기, 노리쇠, 방아쇠 등에 개량이 이루어졌고 곧이어 발발한 1차대전과 적백내전을 거치면서 일선 장병들의 기본 화기로 애용되었다.

그렇다 보니 여타 소총과 비교하여 많은 종류의 파생 형이 등장했다. 특히 1907년에 등장한 기병용 M1907 카빈은 총신이 28.9센티미터나 짧아졌다. 하지만 초기에 모신나강은 의미 있는 활약을 보이지 못했다. 사실 소련군조차도 이 총의 장점을 제대로 모르고 있었다. 모신나강은 간단한 구조 덕분에 신뢰성이 좋아 악조건에서도 쉽게 사용이 가능했다. 따라서 앞서 언급한 것처럼 혹한의 날씨에도 무난히 작동했다.

한마디로 모신나강은 러시아 환경에 가장 잘 맞는 소총이었다. 2차대전 당시에 소련군 보병의 기본무장이었던 M1891/30은 전쟁 전인 1930년부터 1945년까지 생산되었는데, 현존하는 대부분의 모신나강은 바로 이 모델이다. 전후에 총기사의 명품인 AK-47이 기존 소총과 기관단총을 일거에 대체하며 기본화기로 채택되면서 일선에서 퇴장했지만 누가 뭐래도 모신나강은 역사상 가장 컸던 전쟁을 승리로 이끈 소총이었다.

저격수의 전설을 만든 모신나강

 

 

전설적인 소련의 저격수 자이체프와 그가 사용한 모신나강 소총

 

 

54명을 저격한 로자 샤니아(Roza_Shanina)와 그녀의 모신나강 소총

모신나강은 사거리가 길고 파괴력이 좋다 보니 저격용으로도 좋았다. 대규모 기동전에서는 이런 효과를 볼 수 없었지만 전선이 교착되거나 엄폐물이 많은 시가전 등에서 저격수의 역할은 컸다. 흔히 ‘원샷 원킬(One shot, One kill)’이라는 말로 설명할 만큼 저격용 총은 정확도와 파괴력이 생명인 무기다. 2차대전 당시에 소련군은 전쟁사에 길이 남을 수많은 저격수를 배출했는데, 이들 대부분이 애용한 총이 바로 모신나강 소총이었다.

2001년 개봉한 영화 <에너미 앳 더 게이트(Enemy at the Gates)>는 스탈린그라드 전투를 배경으로 소련군과 독일군 저격병의 숨 막히는 대결을 묘사했다. 이 영화 주인공의 모델인 실존 인물 바실리 자이체프(Vasily Zaytsev)가 사용한 무기가 바로 모신나강 소총이다. 그는 공식적으로 242명을 저격했다고 하는데, 이때 사용한 탄환은 불과 243발이었다고 전한다.

단순함의 미학

모신나강 소총은 특수목적용 일부 모델이 1965년까지 제작되었을 만큼 장기간 생산되었는데 총 3,700만 정이 만들어진 것으로 추산한다. 오랫동안 사용하다 보니 2000년 이후에 발발한 이라크 전쟁에서도 등장했다. 모신나강은 가혹한 조건에서 무리 없이 작동하는 만큼 어쩌면 단순함의 미학이 가장 빛난 소총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6.25전쟁 당시에 북한군이 보유한 주력 화기이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그다지 눈길을 주고 싶은 소총이 아닌 것도 사실이다.

 

특이한 모양의 단축 형 모신나강

제원
탄약 7.62×54mm R / 작동 볼트액션 / 전장 1318mm / 중량 4.05kg / 발사속도 분당 15발 / 유효사거리 550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