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의 공화정 말기 때 사회가 문란해지고 독재 정치의 횡포가 심해지면서 이를 바로잡기 위해 새로운 정치 체제가 등장하게 되는데 이것이 제국 체제였다. 콘술을 선출하는 등 대중주의 정치가 오히려 혼란을 가중시킨 측면이 많기 때문에 강력한 1인 중앙 집중체제를 구축한 것이다. 초대 황제 아우구스투스(기원전 63~서기 14)는 이런 기대에 잘 부응했다. 그는 공화정 말기의 혼란을 잘 수습하면서 기원전 27년에 황제로 등극해서 로마제국의 문을 열었다. 그 후 무려 41년을 통치하면서 제국의 기틀을 닦았다.
제국의 성립과 아우구스투스의 건축
건축도 중요한 통치수단이었다. 아우구스투스의 주택이라고 불리는 그의 황궁을 보면 웬만한 귀족의 주택보다도 소박하고 규모도 작았다. 이 주택은 팔라틴(팔라티노 언덕)이라는 로마 황궁단지의 시작을 알리는 건물이지만 이후 황제들의 화려한 황궁들에 비하면 너무 검소하고 소박해서 그의 생활이 얼마나 극기적이었는지를 잘 알게 해준다. 무엇보다 포룸 로마눔을 대거 정비하고 확장했다. 일상 시민활동을 위한 면적 확장에 더해 여러 신전을 세움으로써 로마 시민들에게 자긍심을 심어주었다. 현재 이곳에 남아있는 콩코르디아 신전 등 주요 대형 신전들은 대부분 아우구스투스 때 세운 것이다. 여기에 더해 임페리얼 포룸에 아우구스투수의 포룸을 더해 확장했다.
포룸 로마눔 전경 - 아우구스투스는 포룸 로마눔을 정비, 확장했다 <출처 : Stefan Bauer at de.wikip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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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르 교 - 로마제국의 초대황제 아우구스투스는 공공건축을 크게 일으켰는데 제국 내 곡창지대에 세운 다리와 수로도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네로에서 콜로세움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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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무스 트란지토리아 - 네로의 화려한 개인 황궁 가운데 하나였는데 볼트 천장에 그려진 장식이다.
네로를 겪은 뒤 로마는 플라비우스 왕조로 넘어가는데 이 시기 동안은 로마 제국의 집단적 정체성이 확립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것을 대표하는 건물이 콜로세움이다. 베스파시아누스 때 짓기 시작해서 티투스 때 완공했으며 로마의 원형극장, 나아가 로마건축 전체를 대표하는 건축물이다. 검투사 시합 같은 부정적 놀이에서 각종 정치집회와 문화행사에 이르기까지 로마의 집단욕망이 공공사의 형식으로 분출되는 통로였다. 지금 관점에서 보면 콜로세움은 여전히 부정적 이미지가 강한 것이 사실이지만 당시의 관점에서 보면 대제국 로마의 거대 욕망이 자칫 개인사로 변질되어 타락할 위험성을 공공사로 바꿔 표출시키는 순기능도 가졌던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실제로 콜로세움을 지은 뒤 로마제국은 2세기의 전성기를 맞이하게 된다.
콜로세움 - 로마가 최초로 집단적 정체성을 가진 시기에
지어진 대형 공공건축물이다.
콜로세움의 파사드 모습<출처 : wikipedia>
5현제와 로마 건축의 전성기
2세기는 로마의 전성기였다. 양자 상속제를 도입해서 황실의 핏줄을 벗어나 제국 전체에서 가장 능력 있는 사람에게 황제 자리를 맡겼다. 96년에서 180년에 이르는 기간 동안 5명의 황제가 이 제도를 이어가서 5현제의 시대라고도 불린다. 5현제 가운데 건축적 업적을 남긴 사람은 트라야누스와 하드리아누스였다. 차이도 컸다. 트라야누스는 철저하게 공적인 인물이어서 모든 치적을 제국의 공익에 집중한 반면 하드리아누스는 예술가라고 불러도 좋을 정도로 사적 욕망도 큰 인물이었다.
트라야누스의 건축 업적 가운데 최고봉은 로마 시내에 지은 시장과 포룸이다. 그의 이름을 따서 트라야누스의 시장과 트라야누스의 포룸이라고 부르는데 대제국 로마를 경영하는 수도의 심장에 걸맞은 각종 공공건물로 채워진 헤드쿼터였다. 트라야누스의 시장은 포룸에서 벌어지던 여러 도시생활 가운데 경제행위만을 따로 떼어 한 곳에 모은 전문화된 시설이었다. 지름 60미터의 반원형 안마당을 6층 높이의 사각형 방들이 돌아가며 에워싸는 구성을 했다. 이곳은 로마의 경제를 담당하던 심장부였다. 타베르나라고 불리는 로마의 사각형 가게들이 150여 개 입주했으며 이것을 감독 관리하고 지원하는 행정시설이 함께 들어갔다. 국가의 창고, 식량 배급청, 국세청 등이 대표적 시설이었다. 건축 구성도 실용적 목적에 맞게 처리해서 실 배치는 기능을 중시하여 일직선 복도를 따라 배열했다. 아치와 볼트 같은 실용 건축술을 동원하여 튼튼하게 쌓았으며 재료도 대리석이 아닌 벽돌을 사용했다. 트라야누스의 시장은 로마 벽돌쌓기 기술의 정수를 보여주는 점에서 또 다른 중요성을 갖는다.
트라야누스의 시장 - 5현제 나아가 로마건축 전체를 통틀어 공공건축을 가장 많이 시행한 황제인데 로마 경제의 심장부에 해당되는 시장을 닦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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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드리아누스의 빌라 - 스스로 타고난 예술가였던 하드리아누스는 당시까지 축적된 제국의 다양한 건축술을 총 집대성해 대형 빌라단지를 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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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 임석재 / 이화여대 건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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