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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모터

CR&S, '두'를 아십니까

 

 

CR&S의 모터사이클 ‘두(DUU)’

놀라운 일들은 종종 일어난다. 예를들어 차고에서 만든 슈퍼카가 세계 시장에서 일등을 거머쥐는 일 등의 것들 말이다. 자신만의 탈 것을 만드는 일은 모터사이클 세계에서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니다. 모터사이클의 불필요한 부분들을 ‘잘라내는(chop)’에서 출발한 커스텀 차퍼는 전세계적으로 많은 제작자가 존재하며 실력자 또한 많다.

 

 

CR&S는 카페 레이서와 슈퍼바이크의 머릿 글자에서 따온 이름이다

이탈리아 밀라노에 본사를 둔 ‘CR&S’ 역시 이런 작은 제작자 가운데 하나다. 다른 점이 있다면 ‘차퍼’라는 장르와는 관계가 없다. 커스텀 모터사이클을 제작하지만 이들이 추구하는 것은 1960년대와 1970년대에 유럽에서 유행한 ‘카페 레이서’를 바탕으로, 극한의 스포츠성을 발휘하는 ‘슈퍼스포츠’ 장르다. CR&S란 이름 역시 Cafe Racers & Superbikes 에서 따왔다.

밀라네제의 자존심

CR&S-두(DUU)

 

 

우리가 알고 있는 이탈리아 브랜드만해도 상당하다. 자동차와 패션 등의 소비재는 물론, 문화 예술에 있어서도 이들의 영향력은 크다. 이 모든 것을 종합했을 때, 이탈리아인들이 높은 자존심만큼은 지레짐작하고도 남는다.

소규모 제작사인 CR&S 역시 자존심으로 똘똘 뭉쳐있다. 지난 2009년 콘셉트 모델로 첫 선을 보이고 시판 모델을 선보인 ‘두(DUU)’는 밀라노 방언으로 숫자 ‘2’를 의미한다. 이탈리아 내에서도 가장 현대적으로 발전된 밀라노에서 탄생한 제품임을 이들은 더욱 부각시킨다.

실제 CR&S의 슬로건인 ‘Fada s? a Milan, cont il coeur e cont i man.’은 ‘밀라노에서 마음을 담아 손으로 만들다’의 의미로 역시 밀라노 방언을 사용한다. 자신들의 역사와 현대적 감각에 대한 자신감을 갖고 있는 것이다. 또 이런 자신감은 막연한 것이 아니다.

 

 

CR&S의 두는 많은 콘셉트 스케치를 통해 탄생했다.

CR&S의 이름은 모터사이클 역사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들의 역사는 1992년, 창업주인 로베르토 크레팔디(Roberto Crepaldi)에 의해 출발했다. 이들은 영국의 카페 레이서 모터사이클을 소개하는 한편, 밀라노에서 할레디이비슨을 보다 성공적으로 알리는 역할을 했다.

 

 

두 역시 카페 레이서에 가까운 실루엣을 보인다.

백여년의 모터사이클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모델을 열 손가락에 꼽는다면, 그 안에 절대로 빠지지 않을 모터사이클인 ‘브리튼(Britten)’과도 CR&S는 협력 관계를 갖는다. 뉴질랜드의 라이더이자 디자이너, 개발자인 존 브리튼(John Britten)이 만들어낸 V1000은 엔진부터 차체 전반에 이르는 설계와 부품을 자작해 만들어낸 기념비적 모델이다.

 

 

CR&S는 존 브리튼과의 협력 관계를 가졌다. 우측이 사진의 인물이 존 브리튼

한 사람의 개인이 만들어낸 이 모터사이클은 당대 유수의 브랜드와의 경쟁에서 이길 수 있을 정도로 고 성능을 자랑했으며, 여전히 그 가치를 인정받는다. 쉽게 말하자면 창고에서 슈퍼카가 탄생한 것과 다름없다. CR&S는 존 브리튼과의 협력 관계를 통해 브리튼 V1000의 레이스 참전에 기여했다. 이런 일련의 과정 덕분에 CR&S는 존 브리튼 헌정 버전으로 ‘두’를 선보이기도 했다.

 

 

존 브리튼을 기념하는 버전인 ‘두, 브리튼’

‘두’가 2009년 밀라노 모터사이클 쇼를 통해 공개되면서 거의 모든 모터사이클 전문지에서 주목했다. 작은 공방에서 출발한 제작사의 콘셉트 모델로는 디자인적으로나 기계적 완성도 면에서 충분히 그 가능성을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당시 기본형 제품으로 판매 예상 가격은 약 2만3천 유로(한화 환산 시 약 3천300만원)으로 책정됐다.

 

 

최초의 콘셉트 모델이 공개되고 두는 약 100여대의 예약 판매를 이뤄냈다.

비교적 고가임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콘셉트 모델의 공개 이후, 양산 단계에 들어가기 이전에 약 100여대의 예약 판매를 이뤄냈다. 해를 거듭하면서 매 년 밀라노에서 열리는 모터사이클 쇼에 자사의 작품을 선보이며, 시판 모델과 스페셜 모델들을 잇달아 공개했다.

 

 

스페셜 그래픽으로 탄생된 두 부치니(Buzzini)

2번째로 생산된, 2인 승차를 위한, 2기통의, 2천cc급 모터사이클

 

두, 노텐네비아(Nottennebia)

‘두’는 미국 S&S 사의 V형 2기통 엔진을 탑재했다. X웨지(X-Wedge)라 불리는 이 엔진은 배기량이 무려 1916cc다. 보어는 104.8mm 스트로크는 111.1mm다. 공랭 방식으로 엔진의 냉각핀이 존재감을 더욱 부각시킨다. V형 2기통 엔진은 크루저 모터사이클이나 커스텀 차퍼(Chopper)에 사용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두에 탑재된 S&S의 X웨지 엔진, 배기량은 1916cc로 약 2,000cc급이다.

배기량에 비하면 출력은 그리 높지 않다. 회전수 5100rpm에서 약 96마력 수준이다. 반면 두툼한 토크는 두의 성격을 짐작케 한다. 회전수 4300rpm에서 뿜어져나오는 최대 토크는 약 15.1kg-m에 달한다. 이 수치는 소형 차량의 토크를 상회하거나 비슷한 정도다. 무게는 4~3배가 가벼우니, 가속 성능은 결코 만만치 않다. 실제 최고속도는 시속 200km 이상이다.

 

 

두의 계기반, 아날로그 방식의 회전계 밑으로는 최대 토크와 최고 마력 곡선이 표시된 점이 눈에 띈다.

사실 두의 핵심은 프레임이다. 거대한 엔진을 효과적으로 얹고, 스포츠 주행을 즐기기 위해서는 강하지만 탄력있는 프레임의 설 계가 필요하다. CR&S는 메인 프레임에 지름 107.5mm의 스테인리스 스틸 튜브를 사용했다. 엔진 위로 지나는 백본(back bone)타입의 프레임은 연료 탱크를 겸한다. 별도의 연료 탱크 없이 질량 집중화는 물론 외형적으로 독특한 매력을 풍긴다

 

 

두의 핵심은 바로 프레임에 있다.

프레임은 용접으로 구성품을 완성시켜 장착된다. 말 그대로 ‘맞춤’ 모터사이클을 지향한다. 메인 프레임과 뒷바퀴를 연결하는 스윙암과의 연결 고리는 경량 알루미늄 절삭 제품으로 중앙부에 큰 구멍이 뚫려 있는 점이 독특하다. 2인 승차를 고려했다고는 하지만 편안한 투어링 모터사이클과는 거리가 있다.

 

두의 장르를 분류하기란 쉽지 않다. 리어 카울이 짧고 올라 붙은 모습과 CR&S가 갖고 있는 브랜드 특성으로 본다면 카페 레이서로 분류하는 것도 가능하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2000cc 가까운 V형 2기통 엔진은 크루저 모터사이클이나 차퍼에 어울리는 엔진이다.

물론 두와 흡사한 성격을 갖고 있는 모터사이클은 양산 메이커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두카티의 디아벨이나, 야마하의 브이맥스(V-Max)와 같은 모델이 그렇다. 이들이 경우 퍼포먼스 크루저라는 명칭으로 불리곤 하는데, CR&S의 두는 사실 퍼포먼스 크루저에 해당된다고 보기 어렵다. 오히려, 할리데이비슨의 엔진을 이용해 제작된 스포츠 모터사이클인 ‘뷰엘(Buell)’에 더 가깝다

CR&S는 자사의 역사를 통해 1960년대와 1970년대의 카페 레이서가 당대의 슈퍼바이크였음을 언급하고 있다. 이런 의미로 보았을 때, 두는 현대에 아름답게 재현된 카페 레이서로 분류해야 한다. 수제작이기 때문에 개인의 취향에 따라 색상과 파츠들도 주문할 수 있으니, 다른 이들과 차별화되는 모터사이클을 원한다면 두가 그 역할을 맡을 수 있겠다.

 

 

두 알레저(Duu, Alegher)

 

두 골드(Duu, Gold)

자존심으로 똘똘 뭉친 밀라네제의 작품이자, 강력한 존재감을 자랑하는 두의 가격이 3200만원 선에서 출발한다고 했을 때, 의외로 저렴하다고 생각이 드는 건 나 하나 뿐 일까? 물론 컬러 옵션이나 세부 사항을 선택하다보면 비용은 껑충 뛰겠지만 말이다.

 

 

두 스위스 실버(Duu, Swiss Silver)